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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가 교황청 잡혀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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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USDT티비
댓글 0건 조회 182회 작성일 26-08-25 19: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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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 금성의 위상 등을 관측하면서 유럽의 슈퍼스타였고

로마의 예수회 천문학자들도 그의 관측 결과를 확인해 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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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훗날 교황 우르바노 8세가 되는 마페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갈릴레오의 지지자이자 친구에 가까운 인물이었음

한마디로 갈릴레오는 교황청 내부에도 인맥이 빵빵한 당대 과학계 네임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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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616년 교회가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중심이라는 주장을

물리적 사실로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마시오라며 갈릴레오에게 경고함

갈릴레오도 일단 알겠다고 했음

다만 당시 명령이 단순히 사실로 주장하지 말라였는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도 가르치거나 논하지 말라였는지는

관련 문서가 서로 미묘하게 달라서 지금도 학자들이 논쟁하는 부분임

여튼 갈릴레오에게 경고장이 온건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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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623년, 자기 편이던 바르베리니가 우르바노 8세로 즉위함.

갈릴레오 입장에서는

“아니, 내 친구가 교황이 됐네?”
“그러면 지동설 다시 드가도 되는 거 아님?”
“이번에는 지동설 주장 아니고 양쪽 의견을 공평하게 비교하는 책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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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온 책이 1632년의 두 가지 주요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

제목만 보면 천동설과 지동설을 공정하게 토론하는 책 같지만,

실제 내용은 거의 지동설 고인물이 천동설 뉴비를 4일 동안 두들겨 패는 토론 방송에 가까웠음

교황청 검열관에게 출판 허가까지 받았지만,

책이 나오자 누가 읽어도 갈릴레오가 지동설 쪽에 서 있다는 게 너무 뻔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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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옴

지동설을 옹호하는 똑똑한 살비아티, 중립적인 청중 사그레도, 그리고 전통적인 천동설을 옹호하는 심플리치오임

문제는 심플리치오가 토론 내내 능욕당하고 어리버리 타는 역할이었다는 것임

이름 자체는 고대 철학자 심플리키우스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이탈리아어로는 단순한 놈, 쉽게 말해 멍청이 형 같은 뉘앙스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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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갈릴레오가 교황에게 직접 들었던 언급까지 심플리치오의 입으로 말함

우르바노 8세는 대략 신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도 같은 현상을 만들 수 있으므로,

인간이 특정 우주 모형을 절대적 진리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말이 책에서 계속 얻어맞던 심플리치오의 최종 발언으로 등장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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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입장에서는 책을 펼쳐 보니 이런 꼴이었음

갈릴레오 분신: “지구가 움직인다는 증거입니다.”
중립 시민: “오, 말이 되네요.”
교황 의견 담당 캐릭터: “하지만 신께서는…”
갈릴레오 분신: “응, 아가리 띨띨리우스 새끼 ㅋㅋ”
교황: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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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갈릴레오가 처음부터 교황을 똘가이로 묘사하려고 심플리치오를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음

현대 학자들도 고의적인 교황 풍자였다고 단정하지 않음

하지만 갈릴레오의 적들이

성하, 저 심플리치오가 바로 성하를 조롱한 캐릭터 같습니다

라고 부추겼을 가능성은 충분히 거론됨

당시 토스카나 대사의 편지에는 우르바노 8세가 책을 보고 자신이 갈릴레오에게 속았다며 격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확히 무엇이, 어떤 파트가 교황을 가장 화나게 했는지는 확실하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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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당시 우르바노 8세는 30년 전쟁과 교황청 내부 정치 때문에 권위가 흔들리고 있었음

이런 상황에서 자기 친구이자 후원받던 학자가 교황청의 명령을 우회하고,

교황의 의견까지 우스운 캐릭터에게 맡긴 책을 냈다는 인상을 줬으니 정치적으로 그냥 넘기기 어려웠던 것임

과학 논쟁 위에 교황이 자기 측근에게 공개적으로 통수 맞았다는 궁정 정치까지 겹쳐버린 사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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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갈릴레오는 1633년 로마 종교재판소에 소환됨

핵심 혐의는 단순히 지동설을 믿었다가 아니라,

1616년에 받은 금지 명령을 어기고 지동설을 사실상 옹호하는 책을 출판했다는 것이었음

갈릴레오는 “저는 양쪽 의견을 공평하게 소개했을 뿐입니다”라는 취지로 방어했지만,

책 내용이 너무 노골적이라 설득력 따윈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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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은 이단자로 확정이 아니라 이단 혐의가 심히 의심됨이었고,

갈릴레오는 무릎을 꿇고 지동설을 부정하는 철회문을 읽어야 했음

책은 금서가 됐고, 공식적으로는 종교재판소가 원하는 기간만큼 투옥한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거의 즉시 가택연금으로 바뀌었음

이후 그는 피렌체 근처 자신의 저택에서 평생을 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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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갈릴레오가 지하 감옥에서 몇 년 동안 쇠사슬 차고 고문당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틀림

실제 고문을 당한 증거는 없고, 재판 과정에서 고문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경고받은 것에 가까움

불태워지거나 사형선고를 받은 것도 아니었음

그렇다고 별일 아니었던 건 절대 아니고, 70세에 가까운 노인에게 이단 심문과 강제 철회, 출판 금지, 종신 가택연금을 때린 것이니

뭐 엄연한 종교 권력의 탄압이었다고 볼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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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난 뒤 갈릴레오가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음

간지는 나지만 이 이야기는 사건 당시 기록에는 없고,

약 100년 뒤에야 등장하기 때문에 거의 후대 창작으로 봄

실제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가택연금이 아니라 진짜 감옥행이었을 가능성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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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웃긴 점은 갈릴레오가 결론적으로는 맞았지만,

당시 내놓은 증명이 전부 맞았던 것도 아니라는 것임

특히 그는 조수를 지구 운동의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이 설명은 틀렸고,

당시 관측만으로는 코페르니쿠스식 지동설과 튀코 브라헤식 절충 모형을 완전히 구별하기 어려웠음

쉽게 말하면 정답은 맞혔는데 풀이 과정 중 핵심 한 줄이 틀린 학생이었던 셈임

그렇다고 교회가 성경 해석을 근거로 과학적 주장을 금지하고

이단 재판으로 찍어누른 것이 정당화되는 건 당연히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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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갈릴레오가 평소 처신을 잘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음

특히 1615년 갈릴레오가 로마에 갔을 때 남겨진 동시대 편지가 압권임

갈릴레오가 한 저택에서 다른 저택으로 돌아다니며

한 번에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가량의 반대자들과 논쟁을 벌였다는 내용이 나옴

더 웃긴 것은 상대방의 반론이 허술하면 곧바로 반박하지 않고,

자기가 먼저 그 반론을 더 강력하게 보완해 준 다음 통째로 박살냈다고 함

덕분에 상대방은 자기가 처음 말했을 때보다 훨씬 정교해진 논리를 선물받고도 더 처참하게 발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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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현대식으로 번역하면 이랬을 것임

상대: “지구가 움직인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갈릴레오: “잠깐, 그 반론은 너무 허접하오. B와 C도 추가해야 완성되오.”
상대: “오, 감사합니다.”
갈릴레오: “그럼 이제 A, B, C가 전부 틀린 이유를 설명하겠소.”
구경꾼: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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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그냥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입담, 글빨, 비꼬기, 공개능욕 능력까지 만렙인 토론 쇼맨​이었음

당시 로마 상류층도 갈릴레오의 빠른 반격과 화려한 언변을 일종의 구경거리로 즐겼음

문제는 갈릴레오가 상대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만 증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상대가 왜 멍청하게 틀렸는지 관중 앞에서 시범까지 보여 주면서 안사도될 원한을 샀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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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예수회 천문학자 크리스토프 샤이너와의 흑점 논쟁임

갈릴레오의 친구이자 출판 후원자였던 페데리코 체시는

님 상대를 너무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면 예수회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으니 표현을 좀 순하게 하죠? 는 취지로 말렸음

그런데 갈릴레오는 샤이너가 자신의 공로를 침해했다고 판단하자

사실상 조언을 무시하고 훨씬 날카로운 글을 내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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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시: “선생님, 내용은 좋은데 어조를 조금 부드럽게 고치시죠.”
갈릴레오: “알겠소.”
체시: “정말 고치신 겁니까?”
갈릴레오: “상대가 얼마나 틀렸는지 더 알아보기 쉽게 고쳤소.”
체시: “님 이러다 진짜 좆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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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혜성 논쟁에서 치명타가 터짐

예수회 수학자 오라치오 그라시는 혜성의 시차가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혜성이 달보다 먼 곳에 있는 실제 천체라고 주장했음

반면 갈릴레오는 혜성이 실제 천체라기보다 지구에서 올라온 물질과 빛 때문에 생기는 현상에 가깝다고 봤음

현대 지식으로 보면 이 부분은 그라시 쪽이 훨씬 정답에 가까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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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갈릴레오는 여기서 관측 결과를 더 확인해 봅시다로 끝내지 않았음

제자 마리오 구이두치의 이름을 빌려 그라시의 학문적 능력을 공격하는 글을 냈고,

이후 책 시금자에서는 재치와 풍자를 총동원해 그라시를 조리돌림함

쉽게 말해 정답은 그라시가 더 가까웠는데, 댓글 화력과 키배질은 갈릴레오가 압도한 사건​임

로마의 예수회 학자들은 처음에는 갈릴레오의 관측을 인정하고 도와준 적도 있었지만,

이 논쟁을 거치며 관계가 크게 악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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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갈릴레오 주변에서는 이미

님;;;예수회 사람들이 존나 빡쳤고 반격을 준비 중임;;;라는 경고까지 나왔음

그런데 갈릴레오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화났다는 것이 멈춰야 할 신호가 아니라,

자신의 반박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승리의 폭죽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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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갈릴레오만 특별히 인성이 박살 난 미친 키배러였다고 보면 또 과장임

당시 궁정과 학계에서는 논쟁이 후원자의 명예까지 걸린 일종의 결투처럼 취급됐고,

상대의 도발에 강하게 응수하는 것이 어느 정도 기대되기도 했음

과학 논쟁이면서 동시에 문학 대결, 홍보전, 귀족들 앞에서 벌이는 지적 스포츠였던 셈임

다만 갈릴레오의 공격이 너무 잔인했던것도 사실이긴 함

남들도 칼 들고 결투하던 시대이긴 했는데,

갈릴레오는 상대를 이기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갑옷 벗긴 다음 광장에 세워 놓고

“이 인간이 왜 멍청한지ㅋㅋㅋㅋㅋ” 해설 방송까지 붙이는 스타일이었음

논리만 반박하면 될 것을 상대의 학문적 능력과 자존심까지 같이 갈아버렸고,

자기 글을 읽는 귀족과 지식인들이 웃을 수 있도록 조롱과 풍자를 양념으로 쳐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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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갈릴레오를 싫어했던 것도 아님

그는 충성스러운 제자와 친구, 강력한 귀족 후원자들을 거느렸고,

로마 사교계에서 환영받는 유명 인사였음

말도 잘하고 글도 재미있어서 키배 뜨는거 구경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고의 콘텐츠였음

단지 갈릴레오와 같은 편이면 든든했지만,

논쟁 상대가 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이 유럽 전역에 배포되는 공개 저격문에 박힐 수 있었다는게 문제 였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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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모든 사람에게 무작정 시비를 건 인간은 아니었음

하지만 누군가 자기 연구, 관측 공로, 논리 능력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절대로 못 참고,

개인 편지로 끝낼 일을 공개 토론과 책 한 권짜리 저격날리는 인간은 맞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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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 친구들의 반응도 대충 이랬음

“선생님 말씀이 맞기는 한데요.”
“그 사람을 굳이 병신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그리고 상대가 예수회고 저분은 교황인데요.”


갈릴레오: “그게 내 논리가 틀렸다는 증거는 아니자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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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이런 성격이 1633년 재판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음

교회의 기존 명령, 지동설과 성경 해석 문제, 교황청 정치와 우르바노 8세의 분노가 더 직접적인 요소였음

그러나 재밌고 똑똑해 보이지만 공격적이고 비꼬는 논쟁 방식으로

수십 년간 적을 쌓아 온 것이 자기 편을 줄이고 사건을 악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충분히 사실임

실제로 많은 학자들도 갈릴레오의 강한 성격과 지나치게 많은 개인적 적이 갈릴레오 사건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언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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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해서 재판받은 위대한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반박 댓글 하나를 보면 잠을 못 자고 200쪽짜리 저격문을 써서

상대 직장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르네상스 학계의 네임드 키배러이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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